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평양 전쟁 (문단 편집) === 일본군 스스로의 문제 === [[일본군]] 역시 전쟁 초기의 성공에 의한 오만과 [[군국주의]] 교육 하에 이루어진 [[인종주의]] 교육관에 의해 야만성이 높은 군대였다. 특히 [[식민지]]의 주민으로서 2등 시민 취급이라도 하였던 [[한국인]]과 [[대만인]]에 비해 [[중일전쟁]] 점령지의 주적인 [[중국인]]에 대한 대우는 더욱 더 처참하여, [[난징 대학살]] 및 [[100인 참수 경쟁]] 등 그야말로 인면수심의 태도를 보여주었으며, 패색이 짙어질수록 이들의 야만성과 광기의 정도는 더더욱 심각해져갔다. 심지어 전쟁 후반부의 일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 중에는, 당시 일본의 우방국 시민도 있었다. 1945년 [[필리핀 탈환전]] 당시 [[마닐라]]의 일본군은 마닐라 주재 [[스페인]] 영사관에 쳐들어가서 민간인 50여명을 학살하고 건물에 방화했다. 이 사건 때문에 1945년 4월 스페인은 [[일본]]과 단교해버렸다. 더군다나 [[나치 독일]]이 수용소에서 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[* 다른 추축국인 이탈리아, 헝가리 왕국, 루마니아 왕국, 불가리아 왕국, 유고 등도 생체실험을 하였다고 한다.] 점령지인 [[하얼빈]]에서 [[731부대]]를 운영하면서 [[중국인]]과 [[러시아인]] [[임산부]]를 상대로 혹은 갓난아기와 아기 엄마를 같이 생체실험을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. 또한 일본군의 문제는 아니지만 아직까지도 이를 옹호하거나 부정하려는 극우세력이 존재하는 것도 문제다. [[일본 극우]]세력 중에는 당시의 일본의 위세에 취해 이 전쟁을 '대동아전쟁', '백인의 압제, 착취로부터 [[아시아]] 해방을 위해 일본이 총대를 멘 정의로운 성전(聖戰)'이라 부르며 온갖 미화를 일삼으며 현재까지도 어그로를 끌고 있다. 1대 남은 [[가이텐]]은 [[야스쿠니 신사]]에 전시 중. 이때의 [[전범]]들을 [[일본]]에서는 영령이나 신으로 모시고 있다는 웃기지도 않을 사실 역시 문제다. 그리고 이런 곳에서 참배를 하면서도 [[전범|참배를 받는 대상이 누구인지]]조차 모르는 곳도 많다는 게 더 문제이며, 한 [[독일인]] 기자가 "이해할 수 없다"고 말하자 참배를 하던 일본인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그 독일인 기자에게 욕을 했다.[* 다만 [[일본]]의 많은 [[신사(신토)|신사]]가 [[전범]]을 일부러 모신다고 왜곡하는 국내의 일부 견해도 잘못된 것이다. [[야스쿠니 신사]]나 몇몇 주요 신사들을 제외하면 많은 일본 신사들은 그저 그 사람이 그 지역 출신 인물이기 때문이거나, 일본군의 군사력 증강에 공헌했다는 이유만으로 전범이 된 사람을 신사에 모신 경우도 존재하는데, 이를 야스쿠니처럼 일괄적으로 보아 일본 전역 곳곳에서 아직도 전범을 기린다고 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한 호도에 가깝다. 이런 것은 오히려 위의 [[일본 극우]]들이 자국민을 선동하기에 좋은 자료만 제공할 뿐이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